요즘 같은 환절기엔 코감기나 재채기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흔하다. 콧물이나 코 막힘이 오래가나 싶더니 결국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진단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치료하는 데는 대개 항히스타민제가 쓰인다. 그런데 항히스타민제를 복용 중이라면 음주를 피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의료진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조언했어도 깜빡 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히스타민제와 술처럼 서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함께 먹으면 안 되는 약과 식품이 여럿 있다. 치료 중인 병이 있거나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피해야 할 식품을 의료진에게 꼭 확인하고 실천하는 게 좋다. 약과 식품 간 상호작용이 자칫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거나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채기나 콧물, 코 막힘, 눈 가려움증 같은 증상이나 일반적인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처방되는 항히스타민제는 몸 속에서 히스타민의 활동을 억제해주는 약이다. 히스타민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노출됐을 때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항히스타민제는 성분이나 사람에 따라 복용 후 졸립거나 어지러운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문에 이 약을 먹는 동안에는 운전이나 기계 조작처럼 섬세한 동작이 필요한 작업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술의 알코올 성분은 항히스타민제의 이 같은 부작용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 복용 중에 음주를 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복용하는 약 가운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진통제 역시 복용 중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진통제는 두통이나 근육통, 치통, 요통, 생리통, 일반 감기, 관절염 통증 등을 줄여주거나 체온을 내리는데 쓰인다. 이를 복용하면서 술을 많이 마시면 위에 출혈이 생기거나 간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특히 매일 술을 3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간 손상이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해열진통제를 복용하기 전에 먼저 의료진과 상의하길 권한다.
통증이나 열, 염증을 줄이는데 사용되는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역시 같은 이유로 복용 중엔 음주를 피해야 한다. 이런 성분이 포함된 복합진통제에는 카페인이 함께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약과 함께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나 음료를 많이 마시면 카페인 과잉 상태가 돼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없어질 수 있다.
위ㆍ식도 역류 질환이나 소화성 궤양 질환 등 위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속이 쓰리거나 배에 가스가 차는 등의 증상을 흔히 겪는다. 이럴 때 의료진은 대개 위산분비 억제제나 제산제를 처방한다. 위산분비 억제제는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위산을 줄이거나 위산으로부터 위를 보호해 염증과 통증을 줄여주는 약이다. 위산분비 억제제를 복용할 때는 커피와 콜라, 차, 초콜릿을 함께 먹지 말아야 한다. 이들 음식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위의 염증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술 역시 금기다. 알코올도 위의 염증을 악화시켜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과 탄산음료는 위산 분비를 자극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를 떨어뜨린다.
제산제는 산성이 강한 위산을 중화시키거나 위장 점막을 보호해 복통을 완화시켜주는 약이다. 제산제를 복용할 때는 과일주스나 콜라처럼 산도가 높은 음료를 함께 마시면 안 된다. 음료 때문에 위의 산도가 높아져 약효가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산화알루미늄이나 인산알루미늄 같은 알루미늄 성분이 들어 있는 제산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특히 오렌지주스를 피해야 한다. 오렌지주스가 제산제의 알루미늄 성분을 체내로 흡수시켜 약효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와 독감 등 각종 감염병으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할 때 꼭 피해야 할 음식도 평소 꼼꼼히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여드름 치료나 세균성 폐렴에 주로 사용되는 약(테트라사이클린계 항균제)은 복용 1시간 전부터 복용 후 2시간까지 우유나 치즈, 요거트, 아이스크림 같은 유제품, 철을 함유한 비타민을 먹지 말아야 한다. 이들 음식과 함께 복용하면 항균 성분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배출돼버리기 때문이다. 곰팡이에 감염됐을 때 쓰는 항진균제 역시 유제품과 함께 복용하면 같은 이유로 약효가 떨어진다.
변비약(완하제)도 우유와 만나지 말아야 한다. 변비약은 대장에서 약효를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위산을 만나도 녹지 않도록 보호막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유는 약의 보호막을 손상시켜 변비약 성분이 대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위장에서 녹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위가 자극을 받아 복통이나 위경련 같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우유나 유제품을 섭취했다면 변비약은 1시간쯤 지나 복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혈압약 중 일부(앤지오텐신 전환효소 저해제, 앤지오텐신Ⅱ 수용체 길항제)는 복용 중 몸 속 칼륨 양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다량의 칼륨은 심장 박동 수를 늘리는 등 심혈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들 약은 매실이나 바나나, 오렌지, 녹황색 채소, 저염소금처럼 칼륨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과 함께 섭취하면 안 된다. 또 다른 고혈압약인 베타 차단제는 고기와 함께 복용하면 어지럼증이나 저혈압을 일으킬 수 있고, 칼슘채널 차단제는 자몽주스와 함께 복용할 경우 약효가 지나치게 증가할 수 있다. 고지혈증 치료제 역시 복용 중에는 자몽주스를 하루 250ml 이상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글 / 임소형 한국일보 기자